교림

사회적 동물-인간은 이해관계로 얼기설기 얽혀있다. 갖은 충돌 가운데서 같은 땅 위 비슷한 외양과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민족’은 구심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스스로의 민족성을 의심하는 개인은 많지 않다. 같은 말을 쓰고, 음식을 먹으며 유사한 가치를 추구하는 다수가 형성한 집단이면 나와 같은 민족이라 자연스레 여긴다. 그러나 민족형성은 역설적이게도 다양성을 통제하는 의도된 정치 행위이다. 타지로 이주한 교포들은 민족 환상을 반전한다.

교포들은 다른 민족들이 쓰는 땅 위에서 그들 고유의 질서를 만들며, 순응하고 타협하며 살아왔다. 현재는 처음 정착한 이들이 자손을 낳아 3, 4세대에 이르렀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이방인. 누구는 일본에 사는 한국인이라 하고, 누구는 한국을 떠난 일본인이라 한다. ‘자이니치(Zainichi)’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소수집단은 손쉽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에게 혐오는 일상의 저변에 은은하게 깔린 물과 같으며 직접적이게도, 은연중에도 나타난다. 이로써 혐오를 인지하는 기제는 자이니치 공동체의 가치체계 내에서 기민하게 작동하게 된다. 그저 살아가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이방인-민족은 언제나 사회가 제시하는 미봉책 앞에서 긴장한다.

 

교림작가는 재일교포 3세로, 기록물과 가족의 기억에 기초한 <자이니치 시리즈>를 제작한다. 흑과 백으로 구현된 기억들은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인상을 주며 지난한 역사를 보여준다.

재일교포 1세대인 작가의 할머니는 생활 근간이 없는 일본에서 가족들과 생활을 꾸려나갔는데, 주로 가난한 시대 상황 속에서 사회 빈민층이 하는 일들을 부담했다. 공장노동, 바타야バタヤ/쿠즈야屑屋(폐품회수업자), 밀조주密造酒 제조 등의 일이 그것이다.

<할머니의 초상>연작은 젊은 할머니와 병색이 완연한 할머니의 초상을 중심으로 당시를 대표하는 사회 문화적 사건들과 개인적 경험들을 환기한다. <할머니의 초상 Ⅰ> 은 고향 제주도의 쌀집, 70년대를 대표하는 북한의 예술영화 “꽃 파는 처녀”, 90년대 행해진 재일교포 모국방문 사업의 이미지들로 1세대 재일교포가 지나온 역사를 조망한다. <할머니의 초상 Ⅱ>에서는 사각 그리드 주위로 할머니의 노동과 터전을 다룬 이미지들을 통해 고단했던 한 일생을 볼 수 있다.

 

교림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집은 방어선으로, 타의에 지배받지 않고 냉대에 지친 이들을 환대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집은 한편으로 외부의 차별이 집중되는 이중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재일교포의 집 안팎을 넘나드는 은연중의 혐오는 그들의 소소한 일상을 갉아 먹어왔다. 직접적이지 않아 오랜 기간 자행될 때 의식에 깊게 각인되는 은연중의 혐오는 손발을 묶고, 입에 투명한 재갈을 물린다.

<부서지기 전> 속 중년여성은 늘상 그렇듯 집안을 유유히 가로지른다. 생활감이 짙게 묻은 부락의 모습은 익숙해 보인다. 하지만 정면을 응시하는 소녀의 무표정한 모습은 불길한 미래를 암시하듯 작품의 긴장감을 배가한다. 집은 이후 90년대 재개발 정책에 의해 강제로 허물어지게 됐는데, 이는 재일교포의 역사가 그래 왔듯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재일교포의 역사는 반복된다. <1959년,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센카와분회>는 그림 중앙에 앉은 가족들이 북송되기 전, 송별회 직후의 사진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약 9만 3000명의 재일교포가 북송되었다. 그중에는 약 1800명의 재일교포와 결혼한 일본인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작품 속 한 곳을 응시하는 사람들은 어떤 새로운 출발을 기대했을까. 정치적 이해관계로 북송된 사람들의 역사는 장미빛이 아니었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 재일교포는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문제 사이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이주민의 후손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본 사회에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했다. 직접적인 혐오는 과거와 같지 않다. 그럼에도 미디어의 혐오 조장과 헤이트스피치는 언제나 쉽게 자행된다.

건강한 사회는 무엇일까. 보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 혹은 혐오가 완화된 사회일까. 혐오는 교묘하게도 새로운 방식으로 잠입해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사회는 과거에 비해 숨을 쉬기 편해졌는지, 소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생각해 볼 때이다.

김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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