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원

 

“혐오는 껍데기에서 시작한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복수(plural)로 존재할 것을 강요받는다. 개인은 대면의 모든 순간 타인의 시각에 의해 인식되고, 그 결과물들은 ‘자아’를 구성한다. 진지원은 그 결과물을 피부와 흡사한 얇은 라텍스 껍데기로 재현한다. 진지원이 피부 껍질을 재현하는 과정은 우리가 존재로서 지각되는 과정과 닮아있다. 하나의 몰드에서 여러 겹의 껍데기가 찍혀 나오듯, ‘나’라는 하나의 존재에 수많은 껍데기가 부여된다. 개인에게 매 순간 부가되는 존재는 그 존재가 단수가 아닌 복수라는 점에서 결국 부재하게 된다.

개인은 타인에 의해 읽힌다. 껍데기는 결코 ‘나’ 그 자체일 수 없다. 동시에 몸을, 껍데기를 통하지 않고 자아를 재현할 수는 없다. 즉 우리는 껍데기라는 매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실체 없는 반사물(reflection)의 집합인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삶 자체의 목표이자 욕망의 대상이다. 껍데기는 자기 존재의 유일한 증거인 동시에 타인의 눈에 기댈 수밖에 없는 외부적 판단의 결과물이다. 이 간극 사이에서 진지원은 오인의 필연성에 집중한다.

그는 <껍데기에서 혐오가 태어났다>를 통해 관람자에게 포착된 껍데기 더미를 바라보는 경험을 제공하며, 개인의 존재 그리고 자아와 가장 밀접하지만 그 실체가 없어 간과하기 쉬운 ‘껍데기’의 존재를 자각하게 한다. 껍데기는 지각의 한계이자 존재의 부재이다. 포착되는 것으로서의 개인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가 결국 타자적인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개인을 혐오 앞에 무력화한다.

진지원이 찍어낸 껍데기는 전시의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르게 읽힌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상황과 대상에 따라 자기 자신에 대한 재현을 의도적으로 표현하며 매 순간 스스로를 전시한다. 자신이 상정한 자아의 모습에 상응하는 측면은 강조하고, 어긋나는 면모는 감추며 전략적으로 페르소나를 연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체가 관계적 욕망에 입각하여 연출해낸 이상적인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주체인 타인의 시선에 의해 껍데기들로 인식된다. 이렇게 우리가 전시해 낸 이미지는 주체가 만들어낸 것인 동시에 타자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에 계속하여 충돌하며 흔들린다.

껍데기는 나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강력하고 유일한 지표이자, 불확실한 시선을 거쳐 사회적 기표 안에서 해석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체의 확인’과 ‘주체의 소멸’이라는 측면을 동시에 가진다. 이 지점에서 진지원은, 이를 몸의 껍질로 가시화함으로써 판단의 과정이 생각보다 무성의함을 드러내고자 한다. 대면의 순간, 개인에게 이마고(imago)를 부여하는 과정은 대부분 눈앞의 얼굴을 혹은 어쩌다 스친 피부를 인식하는 것처럼 피상적인 정도에 그칠 뿐이다.

이때, 껍데기는 내가 의도한 것과 상대방의 해석의 혼합물이기 때문에 누구의 마음에도 완전히 들 수 없다. 그 안의 것은 결국 절대 채워질 수 없는 원초적 결여이며, 공허와 혐오를 낳는다. 그는 만연한 혐오 속, 우리의 시선 또는 타인의 시선을 본질로 오인하는 것만은 삼가기를 당부한다. 그 해석의 영역을 통솔할 수 있다는 착각 또한 개인을 혐오 앞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 뿐이다. 결국엔 규정될 수 없는 ‘무제’의 존재인 우리는, 도달할 수 없는 무언가를 욕망하며 매 순간 타인에 의해 제목 지어질 준비를, 언제나 혐오 당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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